“빠이빠이, 모두 잘 지내라!” (バイバイ、みんな元気でね!)2020年04月16日 00:31


미즈타 후우 (水田ふう, 1947.2.14–2020.2.16)
별세 알림

서울의 친구들에게

미즈타 후우 씨가 2020년 2월 16일 오전 0시 31분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완화케어 병동 병실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떠났습니다.

후우 씨는 작년 4월에 전이성 뇌종양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8월 이후, 그 종양 때문에 그녀는 오른쪽 손발의 자유를 빼앗기고 말을 잃었습니다.
걷는 것도, 쓰는 것도, 젓가락질도, 이야기하는 것도 못하게 되고, 결국 물까지 못 마시게 되면서, 그녀는 10월 말에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그 후 수술과 투약 덕에 그녀는 잠시나마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고, 짧게라도 소통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퇴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유지된 것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끔찍한 병 탓에 갑자기 증후성 간질 발작이 일어나 그녀는 호흡 곤란에 빠졌습니다. 다시 입원한 그녀는 2월 8일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2월15일, 후우 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 전국에서 모여든 친구들이 따뜻한 침대에 누운 그녀를 겹겹이 에워쌌습니다.
그리고 날짜가 바뀐 시간쯤, 그녀는 조금씩 목을 움직이다가 호흡을 멈췄습니다.

후우 씨에게 여러 증상이 나타나고, 혼자 살기가 어렵게 된 무렵부터 저는 곁에서 그녀를 도우며 살았습니다.
그때까지 스스로 할 수 있었던 일들을 못하게 되면서, 언젠가 내가 나 자신이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점차 진행되는 질병을 앓으면서, 갈수록 자신이 침식되어 가는 느낌 속에서, 그녀는 그런 불안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불안에 휩싸여 살지는 않았습니다.
후우 씨는 끝까지 그답게 마음껏 살고자 하였으며 실제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녀의 인간성의 바탕으로부터 솟아나온 명랑함과 생명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후우 씨의 명랑함과 생명력에 매혹된 많은 친구들이 그녀를 떠나보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원식 씨를 통하여 여러분과는 몇 번 만났습니다. 오사카에서, 도쿄에서, 서울에서 뵜었지요.
후우 씨는 가끔씩, “서울의 젊은이들은 잘 살고 있으려나?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면서 그리워 하며 물었습니다.
“빠이빠이, 모두 잘 지내라!”
후우 씨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여러분에게 보냄으로 제 보고를 마무리하겠습니다.

2020.4.15
나카지마 마사카즈 (中島雅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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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田ふう(1947.2.14–2020.2.16)
死去のお知らせ

ソウルの仲間たちへ、

水田ふうさんが、2020年2月16日午前0時31分、静かに息を引き取りました。緩和ケア病棟で、多くの仲間たちに看取られた彼女の顔の表情は穏やかでした。

水田ふうさんは昨年4月に、転移性脳腫瘍と宣告されました。しかし、身近な友人以外にはそのことをもらしませんでした。
8月以降、その腫瘍は彼女から右手足の自由を奪い、失語をもたらしました。
歩くことも、字を書くことも、箸を使うことも、話すこともできなくなり、ついに水を飲むことすらできなくなった10月末、彼女は救急車で病院に運び込まれました。

その後、手術と投薬によって、ふうさんは一時の小康を得ました。好物を食べたり、ほんの少しの話を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退院したのです。
しかし小康が保たれたのは、ほんのつかの間のことでした。
この残酷な病気は、突然、彼女に症候性てんかんの発作を起こさせ、呼吸困難をもたらしました。再入院した彼女は、2月8日、昏睡状態に陥りました。
15日、ベッドに横たわる彼女の周りには、危篤を知らされて全国から集まった仲間たちが幾重にも、あたたかく包むように並んでいました。
そして日付がかわってまもなく、小さくのどを動かした後に、彼女は呼吸を止めました。

ふうさんにさまざまな症状が出るようになり、一人で生活できなくなったときから、私は彼女と暮らしました。
それまで自分でできていたことができなくなり、いつか自分が自分ではなくなるのではないか……。進行性の病に、着々と自身が蝕まれていく実感のなかで、そのような不安は彼女にもあったでしょう。
しかし、彼女は不安にからめとられるようなことはありませんでした。
ふうさんは最後までふうさんらしく、存分に生きようとし、実際に生きた。彼女の人間性の底からわき出ていた明るさと生命力が、それを可能にしたのです。
そしてふうさんは、その明るさと生命力に魅せられた多くの仲間たちに見送られました。

亡くなった金源植さんを介して、みなさんとは数回、会いました。大阪で、東京で、ソウルで。
ふうさんはときどき、あのソウルの若者たちは元気かな? どんな人生を生きてるんだろう? などと、懐かしそうに尋ねました。
「バイバイ、みんな元気でね!」――ふうさんのよく通る声をみなさんに届けて、私からの報告を終えます。

2020.4.15
中島雅一



これはソウルの仲間たちに宛てた手紙です。じっさいに書いたのは先月ですが、友人をたよって、ていねいに翻訳してもらっていました。ふうさんのことはいつかは書くけれど、いまはこの手紙につけくわえることがありません。(日本語圏の)友人たち、横着をゆるせ! NM